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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중심의학, 현대의학의 ‘이정표’가 되다
손기영 기자  |  edit@wellness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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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13  22: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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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근거 모아 의료기술에 ‘등급’ 매겨
- 자궁근종 색전술 등 레벨 A 치료 공인

‘임산부의 메슥거림에는 생강차가 좋다. 콩은 골밀도를 유지시키고 폐경여성의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녹차는 항암효과가 있어 유방암과 전립선암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간요법이나 건강 상식으로 흔히 아는 익숙한 정보들이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모두 미국가정의학회(AAFP)에 의해 효능을 인정받아 ‘레벨 B’ 등급이 매겨진 ‘치료법’이라는 것.

A부터 C까지의 이 등급은 근거중심의학(EBM)에 따라 미국·유럽 등 주로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영양요법·신약품·의료기술까지 질병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치료법이 대상이다.

최고등급인 ‘레벨 A’는 환자중심 근거에 기초한 수십여 건의 양질의 연구(메타분석·RCT연구 등)에서 일관된 치료결과가 나왔을 때 학회 등 전문가집단의 까다로운 심사와 논의를 거쳐 지정된다. 그야말로 의사가 환자에게 권고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치료법이다.

대표적인 레벨 A 치료법으로는 미국산부인과학회(ACOG)가 공인한 ‘자궁근종 색전술’, 미국신경학회가 공인한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 ‘리리카’ 등이 있다.

진료 현장서 의사의 치료법 선택에 활용

근거중심의학은 임상시험 등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 의료서비스의 효과를 객관화함으로써 진료 현장에서의 치료법 선택을 돕는 학문이다.

예전에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학적 판단을 내릴 때 거의 의사 개인의 임상 경험에 의존했다. 하지만 개인의 직관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 환경 변화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이 생겨났는데도 그동안의 관행으로 한두 가지 치료법만 고수해 소극적으로 진료하거나 반대로 무리한 치료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 근거중심의학이다.

예로 자궁근종의 경우 자궁적출술, 복강경수술, 호르몬 치료, 고주파 근종용해술, 자궁근종 색전술 등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 만약 7cm 이상의 자궁근종이라면 자궁을 적출하는 것이 확실한 치료가 될 것이다. 현재까지도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권하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환자가 가임기 여성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과연 자궁을 적출하는 것만이 답일까. 전통적 외과시술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인터벤션 영상의학 분야로 눈을 돌리면 굳이 자궁을 들어내지 않아도 근종의 원인을 없애는 방법이 있다. 종양으로 가는 동맥혈관을 막아 근종을 괴사시키는 자궁근종 색전술이 그것이다.

민트영상의학과 김재욱 원장은 “선진국에서는 자궁적출술과 자궁근종 색전술이 똑같은 ‘레벨 A’ 치료로 인정받는다”며 “그럼에도 자궁근종 색전술은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치료법의 고려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관행보다는 객관적 근거에 따른 치료 권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의 질 보장하는 최소한의 표준화 必

‘어떤 치료법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은 의학계의 중요한 숙제다. 의료서비스의 객관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근거중심의학은 1980년대 말 등장한 최신학문임에도, 현대의학의 이정표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선명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지난 2007년 영국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은 근거중심의학을 항생제, 컴퓨터, 피임약 등과 함께 현대의학에 기여한 중요한 의학적 성과 15개 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국내 의학계에서 근거중심의학의 입지는 아직 좁다. 지난 2007년 근거중심의학 기반의 국가임상진료지침 개발을 목적으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족했지만, 아직까지 연구 결과 적용에 대한 법적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4년간 수행한 총 133건의 연구과제 중 정책에 반영된 과제는 단 7건에 불과했다.

의사의 자율성과 진료권을 훼손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허대석 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은 지난 2011년 5월 2일 코리아헬스로그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획일화된 기준이 아닌 의료의 질 보장 차원에서 최소한의 표준화는 필요하고 그러한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술에 과학적 근거라는 객관적 잣대를 대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는 근거중심의학. 이제 소비자의 권리를 헤아리는 의사의 역할상을 다시금 정립하는데도 물꼬를 트고 있다.

[도움말: 민트영상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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