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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의 스파컬럼] 스파, Pampering인가 혹은 healing인가?소비자 욕망의 근원을 파악해야
손기영 기자  |  edit@wellness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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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3  2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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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 창업에 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 예상해 오던 일이지만 글로벌 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감안하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지금이라도 우물 안 경제, 우물 안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산업과 서비스 패턴을 만들어 내는 일은 중요하다.

문의 상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스파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다. 스파가 뭔지를 모른 채 막연하게 껍데기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여전히 스파를 ‘욕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도 ‘욕조’에 ‘마사지’를 더하는 정도다. 답답한 노릇이다. 일부 교육 기관에서 스파에 관해 강의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혼란 속에 있는 것 같다. 숨이 막힌다. 학생들은 도대체 뭘 배울까? 또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입해 ‘스파’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품을 어떻게 준비할까?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공부를, 또 사업을 한다고 말한다.

스파란 환경, 목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조금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란 시공의 환경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다. 기계화와 인간 소외, 문명과 풍요가 낳은 정신과 영혼의 쇠락, 도시의 각종 공해와 질병, 근대 과학의 오만 등이 우리 삶의 환경이다. 스파의 목표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근원적 욕구란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의 회귀일 것이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억압 구도가 극에 달했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억압에 항거하고 반동했다. 그래서 '복지'(welfare) 개념이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정책 수단으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시대 환경 역시 세계인들이 웰니스(wellness)를 갈구할 만큼 억압적이다.

개인 수준에서 웰니스의 도달 수단은 다양하다. 욕조일 수도, 마사지일 수도, 정치나 철학일 수도, 음식일 수도, 명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스파는 매우 넓은 컨셉이다. 수단과 목적, 환경이라는 요소를 고루 생각하지 않고서는 배움이든, 산업이든 자기 완결성을 갖출 수 없다. 자기 완결성은 그 자체가 유기적인 생존력이요 경쟁력 요소이기도 하다. 스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배움도 사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주변만 맴돌게 될 뿐이다.스파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사유의 단계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근원적 욕구의 충족이나 행복한 삶으로의 복귀라는 목적과 관련된 부분이다. 기존 스파 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메뉴를 보면 팸퍼링(pampering)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힐링(healing)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둘은 무엇일까? 팸퍼링은 사전 그대로 해석할 때 ‘응석부린다’는 뜻이다. 스트레스에 찌든 고객들이 마음껏 응석을 부리도록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위안이나 위락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힐링은 보다 적극적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준다는 것이다.

응석 받아주기와 치유. 둘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꼭지 점으로 수렴하는 유사한 과정 같지만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힐링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파의 존재이유 혹은 목적으로 표방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팸퍼링은 미완(未完)의 컨셉이다. 힐링을 개혁이나 혁명에 비유한다면 팸퍼링은 미봉책 혹은 회유책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어른들은 아이의 응석을 마냥 받아주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꾸짖는다. 사람의 신체와 정신도 마찬가지다. 응석이란 어느 정도 받아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유익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치료의 계기로 잃게 하고 병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잘못된 생활 습관, 식습관, 심신 상태를 그대로 둔 채 입욕이나 마사지 등으로 일시적인 응석만 받아주는 것이 스파의 요체는 아닌 것이다.

일본의 문명사상가인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가 간파한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이른바 무통문명(無痛文明)의 악몽은 팸퍼링과 힐링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통증을 동반하는 진정한 치유를 회피한 채 무통이 전제된 신체의 쾌락과 욕망해소만을 희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파괴적인 문명 트렌드. 이는 죽음의 길로 묘사되기도 한다. 응석과 무통만이 모두는 아닌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기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통의 상품이 거래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혜안, 자연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치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지혜와 성숙함이 요구된다고 했다. 스파는 이러한 지혜와 성숙함에 이르는 이정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년 초 미국 스파업계의 유력 매체인 스파파인더와 뉴욕타임스 간에 벌어졌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스파를 이용하는 최근 고객들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해와 오해의 공방이었다. 최근 메디컬 스파가 급성장하면서 단순한 위락보다는 치유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일단 팸퍼링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스파파인더 측의 승리처럼 보였다. 뉴욕타임스에서는 대응 논평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줄다리기 신경전이었다. 승부를 판정할 만큼 충분히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거나 논의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파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스파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며 껍데기 차원의 논의만 무성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산업의 외형적 변화 속도만 더욱 빨라지고 있다. 목적지가 여기도 아닌 것 같고, 저기도 아닌 것 같다. 시행착오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스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시장에서 수요(demand)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상품 공급자의 기본 상식이다. 수요 예측을 잘못한 공급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 팸퍼링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독소적인 측면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한 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막연히 입욕이라는 것이, 혹은 각종 마사지들은 진정으로 본인의 몸과 마음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파 센터들이 구호삼아 외치는 바디, 마인드, 스피릿의 균형과 회복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잇는 것인지, 또 서비스 제공자 자신들은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S의 스파컬럼] - Reprint from SpaLif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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